"역시 무한도전".
무슨 다른 수사가 필요할까요. 역시 무한도전, 이래서 무한도전 입니다.

최고가 아닌 최선의 도전이 무한도전의 정신이라면 기록경기가 아닌 권투는 승패가 명확하게 나뉘는 무한도전스럽지 않은 경기입니다. 게다가 한-일전은 항상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한 경기이니 이 또한 무한도전스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이런 자극적이고 전형적인 소재를 가지고 전혀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무한도전은 한일전에서 국가를 지워버리고, 복싱에서 승패를 지워버립니다. 국가와 승패를 지워버리니 그 자리에는 땀과 혼이 만들어낸 인간의 드라마가 비로소 빛을 발합니다.


한일전? 선수들의 땀의 대결!!

일본에 대한 오랜 적대감은 스포츠를 일본에 대한 감정적 복수의 도구로 만들어버린것 같습니다. 한일전 패배의 원인은 종종 선수들의 기량이 아니라 정신력의 부족으로 표출되고, 중립자인 해설자도 가끔 편파적인 해설을 하기도 합니다.

경제력에 맞게 빠방한 지원을 받는 일본선수와 맞서 싸우는 정신력 강한 한국선수. 객관적 실력과 여건이 뒤지더라도 국가를 위해서 어떻게든 이겨야하는 상대와의 숙명의 대결. 이런게 한일전의 전통적인 컨셉입니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이런 대결컨셉을 쫓지 않고 두 선수의 삶과 노력에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정준하와 정형돈이 전형적 부유한 일본선수 이미지를 기대했다가 허름한 쓰바사 선수의 체육관을 보고  허탈해하고, 쓰바사 선수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일본선수를 응원하기로 결정하는 과정은 전형적이어서 이제는 지겨운 한일전 컨셉을 부숴버립니다. 작년의 봅슬레이 특집에서는 전형적인 한일라이벌 관계를 부각시키던 무한도전이지만, 선수들의 삶과 노력에 포커스를 맞추니 국가간의 경쟁도 무색해집니다.

결국 무한도전은 선수들의 땀과 노력의 경쟁, 의지와 의지의 대결이라는 스포츠 본연의 정신을 되살립니다. 스포츠의 제전으로 스포츠 정신이 구현되어야 하는 국제경기들마져 범죄인 사면의 도구나 경제발전의 계기로 둔갑해가는데, 버라이어티에서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되살린 셈입니다.

승패? 경기후 두 선수의 진한 포옹!!

버라이어티, 즉 웃음과 재미를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서 이만큼 진한 감동을 줄 수 있을까요. 무한도전이 명장면을 보여줬습니다. 바로 경기가 끝난 후 두 선수의 진한 포옹과 무한도전 멤버들이 경기에 패한 쓰바사 선수를 위해 흘린 눈물입니다.

이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는 이유는 무한도전이 승패를 지워버렸기 때문입니다. 무한도전은 시합성사부터 훈련과정 그리고 버라이어티에서 복싱경기를 중계방송하는 파격을 시도했으면서도, 정작 이 과정의 결말인 승패판정 부분은 방송하지 않았습니다.

승패가 없어지니 두 선수의 땀과 노력을 주먹으로 나눈 경기는 그 하나하나의 펀치가 모두 소중한 것이 되었습니다. 승자의 주먹과 패자의 주먹으로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선수의 포옹이 승자가 패자를 향해 배푸는 위선의 포옹이 아니라 진짜 우정의 포옹으로 보입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쓰바사 선수를 향해 흘린 눈물은 동정의 눈물이 아니라 그 땀과 노력에 대한 존경의 표시, 어려운 여건에 대한 안쓰러움의 눈물이 됩니다.

승패에 대한 정보를 무한도전 제작진이 제공하지 않아서 최현미선수의 방어전 승리라는 사실이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최선을 다했고 자신의 의지를 주먹에 실어 보여주었다는 진실은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한일전 승리의 쾌감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어느 한 선수의 노력은 세상에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승패의 쉬운 이분법 대신 두 선수 모두의 노력을 보여주고 그에 감동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명장면입니다. 승패 대신 다음 최현미 선수의 시합을 안내했습니다. 그래서, 역시 무한도전 입니다.


스포츠 행사가 아니라 스포츠 정신을 살리자.

일본 만큼은 안되지만 한국의 경제력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섰습니다. 열악한 조건에서 운동하는 선수가 있는 것은 한국이 경제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돈되는 스포츠와 엘리트 스포츠에만 자본을 쏟아붇고 정작 스포츠 기반시설과 다양한 종목에 대한 관심을 쏟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계 챔피언이 방어전 치를 비용도 못 버는 나라가 올림픽을 유치한다고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어서 올림픽 시설을 짓습니다. 그래서 누구는 땅값이 오르고 누구는 도지사 재선에 성공합니다만 여전히 세계챔피언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가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 흘린 땀을 지켜주지도 못하는 나라가 올림픽을 유치한다고 범죄자 재벌회장까지 사면해 줍니다. 범죄자 재벌회장의 로비(좋은 말로는 유치전이라고 하는)를 통해서 올림픽만 유치하면 국격이 높아지고 경제가 발전한다고 합니다만 그런다고 최현미 선수를 비롯한 비인기 종목의 선수들의 운동환경이 좋아질까요?

국격을 높이고, 경제를 발전시키고, 땅값을 올리고, 지지도를 올려주는 스포츠행사에 목메느라 정작 스포츠 정신은 잊은지 오랩니다. 이제 선수들의 땀과 플레이에 집중할 수는 없을까요?

무한도전처럼 말입니다.


덧.
좀 곁다리의 이야기입니다만, 기왕 권투이야기와 반일감정이야기가 나왔으니 몇자 더 적어봅니다. 스포츠를 별로 즐기지 않는 제가 본 가장 우스운 일본에 대한 적대감정 표출은 '내일의 죠'라는 권투만화가 한국에서 방영되면서 생겼던 에피소드 입니다.

70년대 유명 일본 만화 '내일의 죠'를 에니메이션의 거장 데자키 오사무가 에니메이션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내일의 죠'란 권투만화영화가 90년대 초반에 MBC에서 '도전자 허리케인'이란 제목으로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주제가를 김종서가 불렀었죠. 당시 고등학생이던 저는 이 만화영화를 보기 위해서 저녁을 굶곤 했었습니다. (어린이 대상으로 편성되어서 고등학교 저녁시간과 겹쳤습니다.)

그런데 시청률도 좋았던 이 만화영화가 어느날 갑자기 중단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호들갑 인터넷 언론이 없던 시절이라 갑작스런 중단의 이유도 모른체 몇년을 보냈습니다.

대학에 입학해서야 원작을 접하고, 방송중단의 이유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90년대 초반의 아동 만화영화는 외국작품의 인물이름과 배경등을 한국에 맞게 바꾸어 방영하곤 했습니다. 일본 만화인 독수리 오형제의 주인공 이름이 모두 한국이름인 이유죠.

내일의 죠 역시 도전자 허리케인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되면서 한국선수의 성장기로 내용이 변했죠. 문제는 죠가 세계타이틀 매치를 하면서 시작됩니다. 대전상대로 한국선수가 등장하게 된거죠. 아무리 이름과 배경을 바꾼다고 해도 원래 일본선수인 죠를 한국선수로, 원래의 한국선수를 일본선수로 변신시키는 것은 설정의 무리가 올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시의 정서상 일본선수가 한국선수를 이긴다는 내용의 만화영화를 그것도 어린이 시청시간에 내보내는 일은 용납이 되지 않았죠. 때문에 극전개 중간에 만화를 중단시켜 버렸습니다.

덕분에 원작을 못보고 MBC에서 방영하다 중단한 '도전자 허리케인'만 본 시청자들은 내일의 죠의 저 유명한 엔딩장면과 대사, 죠가 죽기전에 내뱉는 "하얗게 불태웠어"를 알지 못하게 된거죠. 이 명장면은 케로로를 비롯한 수 많은 만화와 에니메이션에서 패러디되었는데요, 어설픈 반일감정의 표출이 모두 웃을때 혼자 못웃는 사람들을 만든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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