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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알제리의 벤탈하에서 250여명이 살육된 사건이 일어난다.

AFP의 사진작가 호신은 살육이 벌어진 다음날 사건 현장에 도착해 사진을 찍었다.

호신은 사진들 중 몸이 잘려진 희생자들의 사진 두장과 8명의 아이를 잃고 울부짓는 한 여인의 사진을 보냈다.

 

호신은 언론들이 살육의 참혹함을 잘 보여주고 있는 희생자들의 사진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신의 예상과 달리 다음날 모든 유럽의 신문들에는 울부짓는 한 여인의 사진이 실렸다.

 

바로 이 사진이 모든 신문의 일면을 장식한 사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사진이 손발이 잘려나간 희생자들의 사진보다 더 학살의 참상을 잘 설명한다고

편집자들이 선택한 배경에는 사회문화적 기억이 깔려있다.

사진 속 여인이 지니는 동작, 옷, 조형적 요소들이 모두기독교인들의 사회기억 속에 뿌리내린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고통을 재현하는 상징적 형상인 ‘피에타’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피에타란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말한다.

기독교사회에서 예수를 잃은 마돈나의 이미지인 피에타는 희생자들의 사진보다 더 큰 상징적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각종 피에타들

 

 

사진은 비단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내포한다. 이는 작가와 관객이 공유하는 사회기억에 근거하게 된다.

 

사진에 의미를 내포시키는 것은 제작과 수용단계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즉 생산의 측면에서 작가는 단순히 피사체를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피사체를 선택하고, 또한 앵글과 프레이밍을 통해서 자신의 직업적, 미적,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내포한다.

이는 편집자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또한 수용단계에서는 관객들은 자기 주관에 의해 사진을 해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피에타의 경우처럼 사회적으로 상호작용 속에서 생겨난 ‘의미의 저수지’를 벗어나기 힘들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반영한다는 신화는 사실이 아니며,

사진은 제작자, 편집자의 의도, 사회문화적인 기억에 의해서

새로운 의미와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기도 한다.

 

 

 

* 덧붙여

호신이 제공한 모호한 정보에 근거해 AFP는 사진 설명을 달면서 실수를 저질렀다.

문제의 여인은 살육 현장에서 8명의 아이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오빠 부부와 여조카를 잃어버렸다.

이 사진 또한 살육의 현장에서 촬영된 것이 아니라 희생자들의 가족들이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지미를리(Zmirli)병원에서 촬영된 것이다.

 

그런데 이 여인이 자신의 아이들을 희생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사진이 가지는 상징적 힘을 전혀 퇴색시키지 않는다.

실제로 이 사진은 한 사회 전체의 고통을 재현하면서 유혈 테러에 의해 수많은 양민들이 희생되고 있는 알제리의 상징이 됐다.

분명 아랍인들은 이 사진을 유럽 언론들이 명명하듯이 ‘마돈나’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이 사진을 내전에 의해 찢겨진 한 민족의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한가지 더 덧붙여

마리아와 마돈나를 함께 써서 오해가 생기는 분들이 있으신것 같군요.

마돈나는 성모마리아를 뜻하는 이탈리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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