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논란이 되고 있는 주민등록법을 개정할 모양이다. 개정의 징후는 곳곳에서 보인다.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은 20일 불교방송과의 전화연결에서 “‘위장전입’을 하는 건 명백한 불법으로 문제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 당시에 위장전입을 한 분들이 정말 많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아이가 초등학교에 배정받았는데 줄긋기가 잘못돼 20~30분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경우의 ‘위장전입’이라면 이것은 자질이나 능력에 흠집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 등 인사청문회 대상자 가운데 상당수가 위장전입을 한 것으로 드러났으나 청와대 관계자는 위장전입 문제에 대해 ‘자녀교육용은 양해하되 재산증식은 안 된다는 내부기준이 있다’며 이미 주민등록법 개정의 가이드라인이 있음을 언론을 통해 시인했다.

여당인 한나라당 안형환 대변인은 위장전입의 문제를 두고 "전 정부부터 계속되어 온 소모적인 논란인 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최고의 사회적 합의는 성문화된 법이다. 정부여당의 대변인이 이미 법이 정하고 있는 위장전입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다시 주장한다면 이는 현행 주민등록법의 개정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개정 주민등록법은 현행법과 어떻게 달라질까? 물론 아직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할 바 없지만, 정부여당의 태도와 입법기관인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통해서 대충의 윤곽은 확인할 수 있다. 개정안의 윤곽은 다음과 같다.

현행안
제37조 (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3항. 제10조제2항을 위반한 자나 주민등록 또는 주민등록증에 관하여 거짓의 사실을 신고 또는 신청한 자(위장전입)

개정안
제37조 (벌칙) 위장전입자 중 고위공직자 및 그 후보자는 공개사과형에 처한다.

 

아직 법률은 개정되지 않았지만 실제로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총리와 장관후보자를 포함한 고위공직 후보자들은 개정될 주민등록법을 미리 적용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두번에서 많게는 네번까지의 위장전입으로 주민등록법을 어긴 사람들을 인사청문회에서 여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이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흠'을 꾸짖는다며 되려 역성이다. 그저 '송구스럽다' 한마디로 현행 3년 이하의 징역이니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니로 되어있는 법 정도는 무마시켜줄 기세다.

공개사과와 같은 처벌은 고대에나 있었을법한 처벌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사회적 합의가 지배하던 시절에나 대중앞에서 공개적으로 모욕당하고 사과하는 것을 처벌로 합법화했다. 범죄를 저지른 이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처벌방법이지만, 잘 알다시피 한나라당은 그런 인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어쨌든 성문화된 법에 따라 의당한 처벌을 받아야할 주민등록법 위반자들이 상당히 모욕적으로 보이는 '공개사과형'에 처해졌다. 고대 로마에서나 벌어질 법하고 성문법이 있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안 벌어질 듯한 일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물론 옛적에 저런 수모를 겪은 사람은 평생을 그 죄의 낙인 속에서 살았지만 현대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이들이 곧 고위 공직에 올라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호통칠 예정이다.

저 옛날에 플라톤이 국가의 통치자들에게 사유재산을 금지할것을 주장하며 부인과 가족까지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유는 통치자가 자신의 재산을 늘리려하고 자신의 가족들을 이롭게 하고자 국민들의 것을 빼앗을까봐 걱정해서였을 것이다. 옛 철학자가 부인공유제라는 무리수까지 뒀던 이유를 오늘의 대한민국이 이렇게 증명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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