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의 인권을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가에 대한 한 블로거의 기사를 읽다가 포스팅을 합니다. (관련기사 인권?인권!어디까지가 인권일까?http://carlove3.mdtoday.co.kr/6)
대한민국 성인남성 모두 하는 말이 있다.
'내가 군대생활 가장 힘들게 했고, 내가 근무하던 곳이 가장 힘든 곳이다'
그리고 이런류의 이야기는 대부분 술자리에서 듣는다.
이성적으로 판단해보면 대한민국 예비역 모두가 가장 힘든 곳에서 군생활을 했을리 없지만, 술한잔 들어가고 개인감정이 논리를 지배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의 군생활은 특전사급으로 변신한다. 전방근무를 했지만 상대적으로 편한 보직이었던 나도 술한잔 들어가면 특전사가 되고는 한다.
블로거 초멋진구마왕님의 글을 읽다 전의경이 시위대에 맞는것을 두고 전의경의 어려움을 전하는 내용을 보면서 문득 남자들 군대이야기가 떠올랐다. 군대시절 남보다 쉬운곳에서 근무했다는 사람이 없듯이, 시민들을 때렸다는 전의경은 왜 한명도 없을까 궁금해진 것이다.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집회는 제외하고, 집회에서 몸싸움이 일어나는 원인은 두가지다. 시위대가 가려는 곳을 전의경이 막아서서 시위대가 이를 밀려는 경우와 강제해산 명령이 내려와서 전경이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시위대를 밀려는 경우다. 폭력은 전자는 주로 시위대가 후자는 주로 전의경이 행사한다. 그리고 두 경우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맞고 있는 경우는 없다. 쌍방간의 폭력이 일어나는 거다. 폭력시위에는 폭력진압이 폭력진압에는 폭력시위가 같은 현장에서 잇달아 발생한다.
그럼에도 왜 때렸다는 시위대도 없고 때렸다는 전의경은 없는데, 맞았다는 시위대와 맞았다는 전의경은 그렇게 많은 것일까? 이유는 술자리 군대이야기 똑같다. 상황을 논리적으로 보자면 폭력현장의 한 당사자이지만 개인감정에 의해서 표현하면 맞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시위대도 전의경도 때린 사람이 없는 이유는 이렇다.
시위대는 주장을 전달하려 행진하는데 전의경이 막자 전진하고자 밀었고 이에 전의경이 폭력을 행사했다. 전의경은 시위대들이 해산하고자 했는데 시위대가 폭력을 행사했다. 즉 서로 자신이 한 것은 폭력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상대방의 폭력만 폭력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자신이 행한 것은 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시위대는 주장할 기본권을 전의경이 막았기에 자신의 권리를 지킨 행동이니 폭력이 아니고, 전의경은 먼저 질서를 어겨서 혹은 위에서 시켜서 진압봉 휘두른 것이니 자신은 폭력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자위를 위한 행동이었다고 여긴다.
시위대에 맞아서 다치거나 불구가 되는 전의경이 있고, 전의경에 맞아 죽는 시위대가 있는대 현장에서 직접 폭력을 휘둘렀던 당사자들이 서로 자신들은 폭력을 당했다고만 하는 셈이다. 물론 전경이든 시위대든간에 내가 맞았다면 나도 폭력을 당했다고 말할것 같다. 이해는 가는 심정이다.
문제는 폭력을 당했을때 분노의 방향이다.
중학교에서 친구랑 싸워서 때리고 맞았다면 앞으로는 서로 안보면 된다. 하지만 국민과 전의경은 한번 의가 틀어졌다고 만날때마다 싸우면 되는 사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왜 폭력이 발생했는지 어디다 분노를 돌려야 할지는 고민해봐야 한다.
시위는 사회갈등 때문에 발생하고, 사회갈등에 대한 통합력이 떨어지는 정치권력이 유사시에 전의경을 동원해서 이를 해산시키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폭력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폭력의 근본적 원인은 사회갈등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다. 이점을 시위대들은 인식하고 폭력의 가해자를 전의경이 아니라 정치권력에 두는 반면 전의경들은 폭력의 가해자를 시위대로 인식하는 오류를 종종 범한다.
'위에서 시켜서 어쩔수 없이 진압봉을 휘둘렀다'는 전의경의 폭력행사에 대한 주된 논리는 뒤집으면 '위에서 맞아야할 폭력을 내가 당했다'라는 폭력피해에 대한 논리로 변해야 한다. 깍두기 형님들이 대신 깜방에 좀 갔다와라고 하면 검찰이 그를 깜방에 넣은게 아니라 형님이 그를 깜방에 넣은 거라는 이야기다.
시위대, 그 시위대의 대상이 되는 정치/행정권력, 그리고 전의경이 3명의 시위폭력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사실 전의경은 이 드라마의 조연일 뿐이다. 주연도 아니고 조연인데 맞기는 주연급 시위대 만큼 맞고, 이쪽편 주인공은 암것도 안하고 위에서 지시만 내리는 정치/행정권력이니 불쌍한 조연 전의경이 억울할 만도 하다.
하지만 그 억울함의 대상이 시위대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의경과 시위대의 1대1 맞짱 액션극으로 드라마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것이다. 그리고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이 1대1 맞짱 액션은 양자가 다 폭력의 가해자다. 다시한번 이야기 하지만 전의경은 주연이 아니다. 그리고 주연이 되려고도 해서는 안되는 드라마다.
사정이 딱해서 시위를 하러 나온 사람도 억울하고, 그 사람에 맞는 전의경도 억울하다. 그 전의경이 때려서 맞는 시위대도 억울하다. 시켜서 때렸는데 때렸다고 욕먹는 전의경도 억울하다. 주인공이 세명인데 왜 두명만 계속 억울한지를 고민해 보면 억울함을 유발시킨 사람이 나올꺼다.
난 작전병이었지만 내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힘들게 군생활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중에 이말에 찬성하는 예비역이 있는가?
이말을 찬성하지 않는다면 나는 억울하게 시위대에게 맞기만 했다고 말하지 말자.
난 군대 간부들과 잘못된 군대 정책때문에 내 인생의 26개월을 허비했다.
나를 때린 못된 고참, 어리버리한 후임병이 있었지만 이들이 내 26개월을 허비시킨건 아니다.
전의경 출신인 당신들은 어떤가?
덧.
때렸던게 가슴 아팠고, 맞았던게 억울했다면.
더 많이 때리고 더 많이 맞으라는 이명박식 법질서 강화에 찬성하지는 말자.
더 많이 때리는게 즐거웠다며... 할말 없다.
저 유명한 진보넷의 veritashq님이 트랙백 폭탄을 날려주셨군요.
트랙백을 달아주신건 고마운데 11개나 단 것은 살짝 짜증이나 트랙백 삭제합니다.
대신 여기다 링크걸어드리죠.
진보넷의 유명 보수 블로거 veritashq님의 블로거 들들이 트랙백 달렸었습니다.
http://blog.jinbo.net/veritashq
뭐. 내용은 대동소이한 것들이니 아무거나 읽어보세요.
대한민국 성인남성 모두 하는 말이 있다.
'내가 군대생활 가장 힘들게 했고, 내가 근무하던 곳이 가장 힘든 곳이다'
그리고 이런류의 이야기는 대부분 술자리에서 듣는다.
이성적으로 판단해보면 대한민국 예비역 모두가 가장 힘든 곳에서 군생활을 했을리 없지만, 술한잔 들어가고 개인감정이 논리를 지배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의 군생활은 특전사급으로 변신한다. 전방근무를 했지만 상대적으로 편한 보직이었던 나도 술한잔 들어가면 특전사가 되고는 한다.
블로거 초멋진구마왕님의 글을 읽다 전의경이 시위대에 맞는것을 두고 전의경의 어려움을 전하는 내용을 보면서 문득 남자들 군대이야기가 떠올랐다. 군대시절 남보다 쉬운곳에서 근무했다는 사람이 없듯이, 시민들을 때렸다는 전의경은 왜 한명도 없을까 궁금해진 것이다.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집회는 제외하고, 집회에서 몸싸움이 일어나는 원인은 두가지다. 시위대가 가려는 곳을 전의경이 막아서서 시위대가 이를 밀려는 경우와 강제해산 명령이 내려와서 전경이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시위대를 밀려는 경우다. 폭력은 전자는 주로 시위대가 후자는 주로 전의경이 행사한다. 그리고 두 경우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맞고 있는 경우는 없다. 쌍방간의 폭력이 일어나는 거다. 폭력시위에는 폭력진압이 폭력진압에는 폭력시위가 같은 현장에서 잇달아 발생한다.
그럼에도 왜 때렸다는 시위대도 없고 때렸다는 전의경은 없는데, 맞았다는 시위대와 맞았다는 전의경은 그렇게 많은 것일까? 이유는 술자리 군대이야기 똑같다. 상황을 논리적으로 보자면 폭력현장의 한 당사자이지만 개인감정에 의해서 표현하면 맞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시위대도 전의경도 때린 사람이 없는 이유는 이렇다.
시위대는 주장을 전달하려 행진하는데 전의경이 막자 전진하고자 밀었고 이에 전의경이 폭력을 행사했다. 전의경은 시위대들이 해산하고자 했는데 시위대가 폭력을 행사했다. 즉 서로 자신이 한 것은 폭력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상대방의 폭력만 폭력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자신이 행한 것은 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시위대는 주장할 기본권을 전의경이 막았기에 자신의 권리를 지킨 행동이니 폭력이 아니고, 전의경은 먼저 질서를 어겨서 혹은 위에서 시켜서 진압봉 휘두른 것이니 자신은 폭력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자위를 위한 행동이었다고 여긴다.
시위대에 맞아서 다치거나 불구가 되는 전의경이 있고, 전의경에 맞아 죽는 시위대가 있는대 현장에서 직접 폭력을 휘둘렀던 당사자들이 서로 자신들은 폭력을 당했다고만 하는 셈이다. 물론 전경이든 시위대든간에 내가 맞았다면 나도 폭력을 당했다고 말할것 같다. 이해는 가는 심정이다.
문제는 폭력을 당했을때 분노의 방향이다.
중학교에서 친구랑 싸워서 때리고 맞았다면 앞으로는 서로 안보면 된다. 하지만 국민과 전의경은 한번 의가 틀어졌다고 만날때마다 싸우면 되는 사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왜 폭력이 발생했는지 어디다 분노를 돌려야 할지는 고민해봐야 한다.
시위는 사회갈등 때문에 발생하고, 사회갈등에 대한 통합력이 떨어지는 정치권력이 유사시에 전의경을 동원해서 이를 해산시키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폭력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폭력의 근본적 원인은 사회갈등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다. 이점을 시위대들은 인식하고 폭력의 가해자를 전의경이 아니라 정치권력에 두는 반면 전의경들은 폭력의 가해자를 시위대로 인식하는 오류를 종종 범한다.
'위에서 시켜서 어쩔수 없이 진압봉을 휘둘렀다'는 전의경의 폭력행사에 대한 주된 논리는 뒤집으면 '위에서 맞아야할 폭력을 내가 당했다'라는 폭력피해에 대한 논리로 변해야 한다. 깍두기 형님들이 대신 깜방에 좀 갔다와라고 하면 검찰이 그를 깜방에 넣은게 아니라 형님이 그를 깜방에 넣은 거라는 이야기다.
시위대, 그 시위대의 대상이 되는 정치/행정권력, 그리고 전의경이 3명의 시위폭력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사실 전의경은 이 드라마의 조연일 뿐이다. 주연도 아니고 조연인데 맞기는 주연급 시위대 만큼 맞고, 이쪽편 주인공은 암것도 안하고 위에서 지시만 내리는 정치/행정권력이니 불쌍한 조연 전의경이 억울할 만도 하다.
하지만 그 억울함의 대상이 시위대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의경과 시위대의 1대1 맞짱 액션극으로 드라마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것이다. 그리고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이 1대1 맞짱 액션은 양자가 다 폭력의 가해자다. 다시한번 이야기 하지만 전의경은 주연이 아니다. 그리고 주연이 되려고도 해서는 안되는 드라마다.
사정이 딱해서 시위를 하러 나온 사람도 억울하고, 그 사람에 맞는 전의경도 억울하다. 그 전의경이 때려서 맞는 시위대도 억울하다. 시켜서 때렸는데 때렸다고 욕먹는 전의경도 억울하다. 주인공이 세명인데 왜 두명만 계속 억울한지를 고민해 보면 억울함을 유발시킨 사람이 나올꺼다.
난 작전병이었지만 내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힘들게 군생활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중에 이말에 찬성하는 예비역이 있는가?
이말을 찬성하지 않는다면 나는 억울하게 시위대에게 맞기만 했다고 말하지 말자.
난 군대 간부들과 잘못된 군대 정책때문에 내 인생의 26개월을 허비했다.
나를 때린 못된 고참, 어리버리한 후임병이 있었지만 이들이 내 26개월을 허비시킨건 아니다.
전의경 출신인 당신들은 어떤가?
덧.
때렸던게 가슴 아팠고, 맞았던게 억울했다면.
더 많이 때리고 더 많이 맞으라는 이명박식 법질서 강화에 찬성하지는 말자.
더 많이 때리는게 즐거웠다며... 할말 없다.
저 유명한 진보넷의 veritashq님이 트랙백 폭탄을 날려주셨군요.
트랙백을 달아주신건 고마운데 11개나 단 것은 살짝 짜증이나 트랙백 삭제합니다.
대신 여기다 링크걸어드리죠.
진보넷의 유명 보수 블로거 veritashq님의 블로거 들들이 트랙백 달렸었습니다.
http://blog.jinbo.net/veritashq
뭐. 내용은 대동소이한 것들이니 아무거나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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