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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3 00:39

멕시코내전

멕시코 내전

 

▲ 개요

 

1994년 1월1일 발생한 멕시코 내전의 근본 원인은 원주민에 대한 기득권계층의 철저한 무관심과 가난 및 착취에서 연유한다. 무력충돌을 주도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Zapatista Army of National Liberation: EZLN)은 원주민을 중심으로 한 자생적 조직으로 알려져 있으며 치아파스(Chiapas) 지역을 중심으로 옥사카(Oaxaca), 게레로(Guerrero) 등지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1994년 내전의 발생지인 치아파스 지역은 멕시코 남쪽 끝에 위치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전체인구 350만명 중 원주민이 약26%를 차지하고 있다. 절대빈곤층이 대다수로 전체인구의 절반정도는 수돗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⅔는 상하수도 시설이 없는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다. 또한, 이 지역 초등학교의 절반은 평균 교사수 한 명으로 취학 대상아동의 72%가 초등학교 1학년 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노동 및 가사일에 동원되고 있다. 의료시설도 매우 부족하여 인구 1,000명당 0.2개의 의료시설, 0.5명의 의사 및 0.4명의 간호사가 있고 수술실은 인구 10만명당 하나가 있는 실정이다. 치아파스지역 거주인의 54%는 영양결핍에 시달리고 산악고지지역 거주민의 경우 약 80%가 영양결핍을 겪고 있다.

 

내전의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멕시코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벌목제한 조치에 기인한다. 정부의 벌금부과와 징역형을 동반한 강력한 벌목제한 조치와 강제이주정책은 대다수 원주민의 생계수단을 제한하였다. 이에 반발하여 원주민들은 1991년부터 수 차례의 테러와 소규모 폭동을 일으켰다. 1992년 치아파스 원주민 세력을 대표하여 반정부 투쟁을 주도할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Zapatista Army of National Liberation: EZLN)이 결성되었다.

 

본격적인 대규모 투쟁은 1994년 1월1일 약 600여명의 무장한 EZLN 게릴라들이 치아파스 지역 4개 마을을 점령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멕시코 정부는 이에 대항하여 병력을 동 지역에 급파하였고 헬기와 탱크를 동원하여 EZLN을 공격하였다. 그 결과 1월 6일 EZLN은 점령한 마을에서 철수하여 산악지역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동 사건이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멕시코 정부는 강경 기조에서 후퇴하여 1월10일 停戰을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EZLN 게릴라들이 무장해제할 경우 전원에 대한 사면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양측의 소규모 공세는 1월내내 지속되었다.

 

이후 1994년과 1995년, 멕시코 정부와 EZLN은 협상에 난항을 겪으면서도 일부 합의를 도출하기도 하였으나 간헐적인 군사충돌은 지속되었다. 그러나, 1995년 말부터 양측의 협상은 괄목할 만한 진전을 보였다. 1995년 12월 EZLN은 정치결사단체인 사파티스타 민족해방전선(Zapatista Front of National Liberation: FZLN)을 산하에 결성하여 제도권 진입 의도를 밝히기도 하였다. 1996년 1월, EZLN은 무력불사용을 선언하고 같은 해 2월 EZLN 대표자와 멕시코 정부간 최초로 "원주민 권리와 문화"에 대한 협정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협상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1997년 상반기에는 양측간에 제한적 무력충돌이 발생하는 등 긴장이 고조되었다. 같은 해 7월에 실시한 연방 중간선거에서 집권 PRI당이 정전불안에 대한 반발로 과반수를 상실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양측의 긴장관계는 지속되어 1998년 1월 멕시코 정부의 무장해제 요구를 EZLN이 거부함에 따라 같은 해 6월 EZLN의 근거지를 정부군이 공격하는 등 무력충돌이 심화된 바 있다. 멕시코 정부는 1997년부터 치아파스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여 EZLN의 소탕에 나서고 있다. EZLN 반군은 무장 상태가 열악하여 정부군과 직접적인 전투를 수행할 수 없은 상황임을 고려하여 무력 충돌을 회피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1999년 들어 양측은 직접적인 무력 충돌 보다는 평화협상의 결렬을 상대방 책임으로 떠 넘기는 등 상호 비방과 인터넷 등을 동원한 선전에 주력하고 있다.

 

2000년 7월, 71년을 집권한 PRI 후보를 누르고 "국가행동당" (National Action Party: PAN)의 비센테 폭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폭스는 치아파스 지역에 파견된 정부군 병력의 철수와 EZLN과의 평화협상을 공약한 바 있다. 12월 2일 취임한 폭스는 취임하자마자 1996년이래 중단된 평화협상을 제의하는 한편 치아파스지역에 임시로 주둔하고 있던 정부군 기지를 폐쇄하고 반군을 석방하는 등 일련의 평화 구축 조치를 취하였다. 그 결과, 2001년 3월 사파티스타 지도자인 마르코스가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치아파스에서 멕시코 시티까지 도보로 행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마르코스는 폭스대통령의 회동제의를 치아파스지역내 정부군의 완전 철수를 요구하면서 거절하여 평화협상은 재게되지 못하고 있다. 양측간의 무력 충돌은 1999년 이후 소강상태에 있다.

 

정부측은 1994년 1월에 발생한 내전으로 총 10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발표하였으나 카톨릭 교회는 총 사망자가 4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2002년 사파티스타와 정부의 충돌이 보고되지 않고 있다. (Stratege.com과 BBC News.com에서는 양측의 충돌이 전혀 보고되지 않음) 그러나, 양측간에 신경전이 지속되고 있다. EZLN이 통제하고 있는 치아파스 지역에 여전히 멕시코 정부군이 주둔하고 있고 EZLN은 정부군 병력이 증가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치아파스 지역에서 활동하는 민병대와 사파티스타 멤버간에 간헐적 충돌도 목격되고 있다. 2001년, 사파티스타 지도자인 마르코스가 평화협상 재게를 위해 정부군의 완전 철수를 요구한 이래 양측간의 평화협상은 재게되지 못하고 있다.

(EZLN Communiques.http://flag.blackened.net/revolt/mexico/ezlnco.html참조)

 

 

▲ 의미 및 영향

 

1994년 발생한 사건은 멕시코 내정과 국제사회에 다음과 같은 영향을 주었다. 첫째, 1994년 1월1일 시작된 EZLN중심의 원주민 항거는 단순한 폭동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선, 공세를 주도한 EZLN은 훈련된 무장조직으로 계획하에 조직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또한, 이들은 멕시코 정부에 치아파스 지역의 사회-경제 개혁뿐만 아니라 멕시코 전체 개혁을 포함한 거시적인 조치를 요구함으로써 단순한 폭동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들은 1995년 8월 27일, 멕시코 전역을 대상으로 EZLN의 정치적 장래를 묻는 비공식 국민투표 실시하는 한편, 무장투쟁을 지속하는 등 전국적인 조직체로 성장하고 있다. 따라서, 1994년 1월에 발생한 사건은 치아파스 지역에 국한된 일개 폭동이 아니라 내전의 시발점이 된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1994년 시작된 EZLN의 공세는 PRI의 멕시코 정부에 지속적인 위협이 되고있다. 1994년 1월1일은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NAFTA)이 발효된 날로써 멕시코 정부의 경제적 성취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날이다. 그러나, 이날 시작된 EZLN의 공세는 멕시코 정부의 자신감을 일순간에 무너뜨리고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또한, 동 공세는 20여년 이상 지속된 정국안정의 종결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결과, 1997년 7월 6일 실시된 연방중간 선거에서 집권 PRI가 과반수를 상실하였다.

 

마지막으로, EZLN의 활동은 국제사회에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 등 현대 통신수단을 이용하여 원주민의 가난과 억압 및 열악한 환경을 국제사회에 알림으로써 지지세력 확장에 나서 비정부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 NGO)와 분쟁원인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시도하고 있다. 그 결과 인권관련 기구를 포함한 90여개의 NGO가 "평화를 위한 공간"(Space for Peace)을 결성하여 멕시코 내전에 관여하고 있다. 이러한 EZLN의 멕시코 농민문제 국제화시도는 멕시코 정부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하여 정부의 강경 진압을 억제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 추후 전망

 

EZLN과의 평화협상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폭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양측간의 화해 가능성이 대두된 바 있다. 그러나, 민병대 조직의 EZLN지지자에 대한 테러가 지속되고 있고 EZLN이 치아파스 지역을 포함한 전 멕시코 지역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등 양측 간의 충돌의 여지가 여전히 존재한다. 동 내분의 해결은 PRI 장기 집권으로 야기된 기득권 층의 부정부패와 빈부격차 등의 사회, 경제, 정치 전반의 문제 해결과 밀접히 연관된다. 즉, 기득권 층의 반발을 극복하면서 멕시코가 개혁에 성공할 경우 소외된 민중의 항거로 시작된 동 내전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참고자료

 

△주요일지

 

1994년 1.1 EZLN을 중심으로 농민무장폭동 발생

1.12 EZLN과 멕시코 정부간 휴전합의(사상자 수백명)

2.21 EZLN과 멕시코 정부간 대화시작

10.11 EZLN, 정부의 지속적 탄압과 동 지역의 병력증강 및 도발 등의 이유로 멕시코 정부와의 대화중단 선언

12.1 PRI의 세디요(Ernest Zedillo) 대통령 취임. 치아파스타 지역의 평화 강조

12.19 EZLN 비폭력 군사공세 시도. 치아파스타지역 38개 마을(전체의 50%) 점령

12.20 멕시코 정부군 1,000명, Puerto Cate 지역의 EZLN 공격을 위해 파견

12.21 멕시코 정부군, EZLN 반군 격퇴

12.22 멕시코 정부, EZLN과 치아파스지역의 군사공세 중지 및 협상 합의

12.27 멕시코 정부, 군사공세 중단. EZLN, 점령지역 민간인 통과 허용

 

1995년 1.15 EZLN과 멕시코 정부간 휴전협정을 위한 대화재개

1.16 EZLN 영구 휴전 선언

2.9 멕시코 정부 EZLN지도자들에 대한 체포명령 시행 및 군사공세 재개

3.11 멕시코 의회, EZLN과 대화재개, 군사공세 중지 등을 포함한 법안통과→ 대통령 인준

3.30 미의회, EZLN과의 협상안을 담은 법안 통과

4.9 EZLN과 멕시코 정부간 대화재개, 평화협상을 위한 일정 합의

5.10 EZLN, 멕시코 정부의 원주민보호지역 설정 및 이주 제안 거절

8.27 EZLN, 멕시코 전역을 대상으로 EZLN의 정치적 장래를 묻는 비공식 국민투표 실시

9.10 EZLN, 6대 현안에 대한 협상 제의 ①원주민 권리와 문화(Indigenous Rights and Culture) ②민주주의와 정의(Democracy and Justice) ③복지와 개발(Welfare and Development) ④치아파스 문제조정(Reconciliation in Chiapas) ⑤치아파스지역의 女權문제(Rights of Women in Chiapas) ⑥호전행위 중단(Cessation of Hostilities)

10.18-22 EZLN과 멕시코 정부간 "원주민 권리와 문화"(Indigenous Rights and Culture)에 관해 협상 시작

12-21-1.1 새로운 사파티스타 조직(사파티스타 민족해방전선 Zapatista Front of National Liberation: FZLN) 결성.

동 단체는 정치결사단체로 EZLN 산하에 있음.

 

1996년 한해 동안 EZLN 무력 불사용

2.16 EZLN 대표자와 멕시코 정부간 "원주민 권리와 문화"에 대한 협정을 체결. 또한, 정치적 화해를 위한 지속적 협상에 동의

EZLN과 멕시코 정부간 체결한 최초의 협정

3.21 EZLN과 멕시코 정부간 "민주주의와 정의"에 관한 협상 시작. EZLN은 멕시코 전체 정치체제 개혁을 요구한 반면 멕시코 정부는 치아파스 지역에 국한

8.10 멕시코 남부에서 인민혁명군(EPR), 정부군 습격(2명 부상)

8.12 EZLN과 멕시코 정부간 "민주주의와 정의"에 관한 협상 결렬

EZLN 협상중단 선언

 

1997년 1.11 EZLN, 정부측 협상안 거절. "원주민 권리와 문화"협정의 온전한 이행시까지 정부와의 협상 중단 선언

1.11-3.3 멕시코 정부군 치아파스지역의 병력 증원→동 지역 긴장고조

2.1 치아파스 원주민 9천명, 정부에 대해 "원주민 권리와 문화" 협정 이행 촉구 행진 개최

3.7 멕시코 정부 공권력을 동원하여 EZLN 지지자 65가구 강제 이주

3.14 EZLN과 멕시코 정부간에 제한적 충돌 발생. EZLN 소속 4명 사망(EZLN)

4-7 EZLN과 민병대조직사이에 충돌 발생

7.6 연방중간 선거 실시. PRI 과반수 상실. 중도좌파 민주혁명(Democratic Revolution: PRD)당, 치아파스 지역의 평화정착 요구

9.8 EZLN 소속 1,100명, 정부의 "원주민 권리와 문화"협정 이행 촉구 시위

12.22 민병대 조직원 70명, 치아파스 지역 공격. 45명 사망, 25명 부상

멕시코 정부의 내무장관과 치아파스 주지사 동 사건에 책임을 물어 경질

 

1998년 1.1 멕시코 정부 치아파스 지역 무력집단 무장해제 시도→무력충돌은 없었으나 EZLN 무장해제 거부

1.13 멕시코 정부, 치아파스 지역의 군대지속 주둔 천명

2월 말 EZLN, 정부측 제안 거부

3.1 멕시코 정부, "원주민의 권리와 문화"에 대한 새로운 협상안 제시→EZLN 거부

2-3 멕시코 정부, 치아파스 지역에 병력 증원→동 지역 긴장 고조

4.10 멕시코 정부, 민병대의 도움으로 치아파스 지역의 타니페라(Taniperla)지역 점령, 군 주둔

4.4 멕시코 정부, 사파티스타 지역 공격

5.1 멕시코 정부, 아과틴타(Amparo Aguatinta) 지역 공격

※ 1998년 6월 현재, 치아파스 지역에 약 19,000 난민

5.11 134명의 이탈리아인 치아파스 지역 방문. 멕시코 정부, EZLN을 지지하는 외국인들의 치아파스 방문을 10명단위로 10일간만 허용키로 발표

6.10 멕시코 정부, 1,000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EZLN의 본거지인 산후앙(San Juan)지역 공격→EZLN 6명 사망, 멕시코 정부군 1명 사망

7.8 멕시코 정부, EZLN의 무장해제 요구

7.17 EZLN 지도자 마르코스, 정부와의 평화협상 중단 선언

7.26 EPR, 정부군 바리케이드 공격

 

1998.12.18 멕시코군 장교 6명, 부당하고 낡아빠진 군사법제도를 비판하며 멕시코시티에서 벌어진 시위에 참가.

1999.1.11 멕시코 국방장관, 지난 98.12.18 시위에 참가한 전직장교 6명에 대해 선동 및 반항 혐의로 고발.

3. The US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사파티스타 지도자 마르코스가 쓴 어린이책에 대해 미화 7,500 달러를 상금으로 수여하려던 계획을 취소, 일부 상금이 사파티스타 게릴라운동에 사용될 가능성을 우려함.

3.16. 미정부, 마약조직과 멕시코 엔리께 세르반떼스(Enrique Cervantes) 장군 사이의 관계에 대한 수사를 종료했다고 밝힘.

3.17. 피신중이던 멕시코의 일데가르도 바실리오(Hildegardo Bacilio) 장군, 1998년 12월의 반정부 데모 선동혐의로 체포.

3.23. 멕시코 상원, 1994년 대통령후보 루이스(Luis Donaldo Colosio)를 살해한 혐의로 전임 대통령 살리나스를 조사할 것을 요구.

4.5. 낀따나 로(Quintana Roo)주의 마리오 비야누에바(Mario Villanueva) 주지사가 자신에 대한 마약거래 혐의 수사를 회피하기 위해 도피출국.

4.7. 멕시코정부, 사파티스타 반군들이 지난 4년 동안 지배해오던 산 안드레스 라라인자르(San Andres Larrainzar)에 대한 통치권을 다시 장악

5.8 사파티스타 지도자 마르코스, 멕시코 정부가 평화회담에서 타협을 않고 있다고 비난

7. EZLN, UN 중재에 부정적 반응

8.22 EZLN, 멕시코 정부가 치아파스 지역을 공격할 예정이라고 비난

9.8 멕시코 정부, EZLN에게 즉각적인 협상 재게 요구

9.15 멕시코 정부, 체포된 치아파스 원주민 37명 석방 예정 발표

10.27 멕시코 정부, ERP 지도자 안토니오 체포

12.20 멕시코 정부 치아파스 지역에 병력 증강

 

 

2000년

 

1.7 멕시코 정부, 1994년의 사파티스타 봉기를 기념하기 위해 방문한 외국인 43명 추방

7 감옥에 수감된 EZLN 죄수들 단식 농성

7.2 PAN(National Action Party)의 비센테 폭스 후보가 71년 집권한 PRI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 폭스 후보는 치아파스 지역의 병력 철수와 EZLN과 평화협상 제개를 공약

7.26 EPR, 멕시코 시티 외곽에 위치한 연방 경찰청 습격, 경찰관 1명 부상

8 멕시코 정부군-EZLN, 소규모 충돌

8.4 "평화와 정의"라는 이름의 민병대, 치아파스 남부 지역에 있는 부락에 난입하여 30여 가구 추방

9-11 PRI, 치아파스 지역에서 선거 패배

12 폭스 대통령, 치아파스 일부 지역에서 정부군 병력 철수 명령; EZLN, 평화협상 전제 조건 발표; 2001년 2월, EZLN 대표와 멕시코 시티 방문 예정

12.2 폭스대통령 취임

12.5 폭스대통령, 1996년 이후 중단된 사파티스타와의 평화협상 재게를 제안: 마르코스, 평화협상 제의에 긍정적인 반응. 그러나, 멕시코 정부의 의도를 의심하는 신중한 태도 견지.

12.31 폭스 대통령, 치아파스지역내 군기지 폐쇄를 명령하는 한편 17명의 사파티스타 반군 석방

 

 

2001년

 

1.11 폭스대통령, 평화조치의 일환으로 치아파스지역내의 세 번째 군기지 폐쇄를 발표

3.11 EZLN 지도자 마르코스, 추종자와 함께 치아파스에서 멕시코시티까지 2주간 도보로 행진. 15만명의 멕시코시티 시민의 환영을 받음. 마르코슨 멕시코 정부에게 1996년 EZLN과 정부간 체결한 성안드레 조약을 기초로한 원주민기본법의 제정을 요구. 폭스대통령은 동 법을 이미 의회에 상정한 상태임

3.21 폭스대통령, 사파티스타 지도자와의 회동 및 평화협상을 제의

3.28 EZLN 지도자 마르코스, 폭스대통령의 평화협상 제의를 거절. 치아파스 지역내에 정부군 주둔이 이유

8.26 폭스대통령, 게릴라 단체에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400여명에 대한 수사 지시. 이들은 EPR과 민중무장혁명대(Armed Revolutionary Forces of the People: FARP, EPR의 분파로 추정됨)와 연관된 혐의를 받고 있음. FARP는 8월 8일 발생한 은행 사제폭탄 테러 사건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짐

 

 

 

 

△ 참고 사항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Zapatista Army of National Liberation: EZLN): 1910년에 농지개혁을 이끈 전설적 반정부 게릴라 지도자 사파타(Emiliano Zapata)의 이름을 단체명으로 사용하고 있는 무장 게릴라 단체로 1992년 조직되어 1994년 치아파스타 지역의 농민 폭동을 주도함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음. 지도자는 마르코스(Marcos)로 알려져 있으나 자세한 신원은 베일에 싸여있고 총 인원은 수백에서 수천으로 추정됨. 구성원의 대부분은 원주민으로 알려짐.

인민혁명군(Ejercito Popular Revolucionario, EPR): 1996년 6월 28일 게레로(Guerrero) 지방을 중심으로 처음 등장한 반정부 게릴라 단체로 8월 28-29일 양일에 걸쳐 사전에 철저히 준비된 듯한 공격을 4개지역의 군과 경찰을 대상으로 시도함. 또한, 1997년 3월 아카풀코(Acapulco)에서 정부군과 충돌한 것으로 보고됨. 동 단체는 EZLN과 비교해 볼 때, 보다 잘 무장되었고 기동성과 과감성 및 공격성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산하에 Revolutionary Armed Forces of the People(FARP), Insurgent People's Revolutionary Army(ERPI) 및 Villist Revolutionary Army of the People(EVRP) 등이 있음. 그러나, 이들 단체의 자세한 규모, 조직 등은 아직 밝혀지지 않음. 1996년 12월 이들이 발표한 선언문에 따르면 동 단체의 성립 목적은 PRI 정부를 전복하고 산업을 국유화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음.

 

 
내용출처 : [기타]http://www.kida.re.kr/woww/ 

(출처 : '멕시코 내전' - 네이버 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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